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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4일 목요일

바보들의 행진(1975)

 

감독 하길종│출연 윤문섭, 하재영, 이영옥, 김영숙

 

면접을 하루 앞두고, 이제는 바보들의 행진을 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나도 예쁜고래를 잡으러 갈 때가 되었다.

병태는 시계를 풀러가며까지 영자의 친구들 순자정자옥자에게 생맥주를 쏘지만, 멋진 커리어우먼보다는 한살이라도 어릴 때 비싼값에 시집가고 싶은 영자에게 거침없는 이별통보를 받는다. 군대도 지금의 2배인 3년씩이나 다녀와야 하고, 지금은 사라져 버리기까지 한 철학과에 다니는 불투명한 미래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자는 병태를 사랑한다. 지금이 아닌 1975년이니까.

하지만 엄마 손에 이끌려 선을 보고 시집을 갈 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닌 1975년이니까.

 

대학생으로서 누리고 싶은 것들과 대학생으로서 비춰져야 하는 모습들과 '대학생이니까'로 가두어 버려지는 무거움들간의 혼란. 그리고 스스로도 시시한 대학생이 되고 싶지 않았던 고민과 고통들.

지금 우리 88만원 세대들도 많은 고민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과연 그것들의 무게는 얼마인가? 절대로 헤쳐나갈 수 없는 숨막히는 고민들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들도 진지한 생각이라는 것을 좀 해야한다.

<2009.11.06>

오발탄(1961)

 

감독 유현목│출연 김진규, 최무룡

 

행복할 때는 행복한 것들에 취해 더 마음껏 행복하고, 슬플 때에는 슬픔을 얹고 또 얹어서 그 슬픔을 이겨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사는게 지긋지긋할 때는 오발탄을 보라.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뛰고 있는데 러닝머신 위였다

산더미같은 일들 앞에 멍때리다가 그새 긴 겨울밤이 시작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미치는 방법만을 연구하며 외롭게 살아가다 사랑을 만난 순간 미친놈손에 죽은 사람도 있다. 정신이상의 노모와 영양실조에 걸린 만삭의 아내 사고만 치는 동생 학교도 못가고 신문을 팔고 다니는 막내 동생 어른의 말은 믿지 않는 딸 뒤치닥거리에 썩어버린 사랑니를 뺄 여유조차 없는 사람도 있다.    

앓던 이를 뽑았지만 더욱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우리는 조금 더 괜찮은 지도 모른다.

<2009.11.06>

Serendipity(2001)

 

감독 피터 첼솜│출연 케이트 베킨세일, 존 쿠삭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로맨스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오늘 서울에 첫눈이 온다던데,

하루종일 방 안에서 창문 한 번 안들여다봤지만 대신

8년 전 팽팽한 존 쿠삭의 얼굴 위로 떨어지는 뉴욕의 첫 눈을 함께 맞기 위해 겨울 로맨스의 지존 세렌디피티 재감상

말도 안되는 운명놀음을 지켜보며 초코바를 10개나 까먹었지만 나도 여전히, 올해도, (설마 내년에도) 세렌디피티를 원한다

눈이 내리면 혹시나,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혹시나. 흐흥  

<2009.11.03>

초록물고기(1997)

 

감독 이창동│출연 한석규, 심혜진, 문성근

 

그로부터 12년 후 한석규가 26살로 안보이는거 말고 뭐가 달라졌을까, 이제는 미애가, 배태곤이,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 그리고 막둥이의 꿈이 소박하지 않게 느껴진다는

것

<2009.11.02>

Men in trees(2006~2008)

 

출연 앤 헤이시, 제임스 터퍼, 에밀리 베글, 데렉 리차드슨 등

 

내가 얼마나 사람에게 미련이 없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가끔은 그게 무서워 썩은 줄들을 억지로 잡고 있기도 했다.

이미 썩은 줄은 절대로 동아줄이 될 수 없다고 말하는 이 미드가 그래서 좀 힘들었다. 엄청난 고통이 끝나니 놓아버려야 하는 줄들에 대한 확신이 서더라,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불편함을 느끼게하고 설명을 원하면 구차함을 느껴야하고. 억지로 하던 노력 이제는 여력도 없고 가치도 못 느끼겠다.

전과 다를 것이 없지만 전과는 확실히 다르기 때문에 난 이 불편하고 불필요할 것 같은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당신이 이 미드를 보면 왜 정리를 당했는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르지,

<2009.11.01>

영자의 전성시대(1975)

 

감독 김호선│출연 송재호, 염복순, 최불암, 도금봉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일까

어려운 시대의 한국에서 태어난 것, 동생들이 줄줄이 딸린 가난한 집 장녀로 태어난 것,어쨌거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돈을 벌겠다고 서울로 올라온 것,식모살이를 한 것, 버스 차장을 한 것.. 그렇게 꼬리를 물다보면 그냥 태어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언제나 어디에나 일이 그릇 될 불씨는 존재한다 그 불씨를 끄느냐, 키우느냐의 문제가 아닐까.  

그럼 언제부터가 그녀의 전성시대인가?

모든 불행의 씨앗을 안고 있는 서울에서 그녀, 죽지 못해 살아가는 듯 해도 창수라는 인물의 사랑으로 인해 매일이 전성시대였을지도.

<2009.11.01>

파주(2009)

 

감독 박찬옥│출연 이선균, 서우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끝내, 이선균과 서우의 감정을 묶지 못하고 그들 각자의 감정에 허덕이다가 엔딩크레딧이 끝난지도 모른 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모르겠다

<2009.11.01>

Inglourious Basterds(2009)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출연 브래드 피트, 크리스토프 왈츠, 다이앤 크루거, 멜라니 로랑 등

 

이 영화가 언급된 어디선가 헤모글로빈의 철학자라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별명에 반기를 든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는, 이번에도 그가 극장 맨 뒷줄까지 쉴새없이 튀겨주는 현란한 헤모글로빈에 엑스터시 제대로 느꼈다 하악.

그리고 그 보다 우월한 말장난, 그 보다 우월한 브래드피트,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봉 크리스토프 왈츠,

아돌프히틀러의 얼굴이 총알받이가 되어 구멍이 숭숭뚫리는 장면보다 타이틀 시퀀스에서 크리스토프 왈츠의 대사가 만들어내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아 진짜 꼭 봐요 다들.

<2009.10.30>

축제(1996)

 

감독 임권택│출연 안성기, 오정해, 정경순

 

이준섭의 동화 속 이야기는 한밤중에 속이 미식거릴정도로 가증스럽다. 동화의 미화성과 허구성을 다분히 이용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의 은지 할머니, 이준섭의 노모는 벤자민버튼과 강풀의 어게인속 '어게인'들의 믹스 앤 매치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왜곡은 나쁘다. 자신의 못난 현실이 부각되어 둥둥 떠다니게 될 뿐이다.

죽음 앞에서 초연해지기는 커녕 악에 받쳐 구질구질해지는 사람들

대외적인 진중한 표정 뒤로 쏙딱거리는 싸구려 농지꺼리

상갓집 노름판이 도박판으로 변질되어 오가는 욕과 주먹질

고상한 먹물들의 저속한 행실들

87세 치매노모의 죽음을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냥반들의 메마르고 재빠른 통곡소리

병풍으로도 가져지지 않는 현실이다  

어르신께서 떠나시며 만들어 놓으신 축제, 축제.

<2009.10.30>

자유부인(1956)

 

감독 한형모│출연 박암, 김정림, 양미희

 

은연중 내 머릿속에 자유부인은 누구누구 가슴이 수박만한가 콘테스트스러운 '부인'시리즈의 일종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때 오빠서랍에서 발견된 '솥뚜껑부인 열받았네'(정말 이런게 있을 줄이라고는..)를 떠올리니 깊은 반성이 저절로 들어온다. 몹쓸 일반화..

고전영화의 수많은 매력 중의 하나는 21세기 속에만 머물러있는 편협한 나의 사고를 와장창 깨주는 것이다. 1956년, 오마담을 스쳐지나가는 숱한 비열하고 치졸한 남정네들을 보면 지금이랑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뭐 오마담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오마담의 연애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달면 삼키고 단물 빠지면 뱉어버리는 쓰레기같은 마음은 아니었으니, 일단 가족을 떠나서 본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지금은 비참할 지언정 후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선영씨, 1956년에 가정주부가 가족에게 버림받으면 갈 곳이 어디있나요.    

자유는 사실 아무나 누릴 수 있는게 아닙니다.

<2009.10.28>

Alle Anderen(2009)

 

감독 마렌 아데│출연 버짓 미니크마이어, 라스 에이딘거

 

매달 잊지않고 찾아오는 감기의 10월버전은 독하기도 하다, 코를 너무 완벽하게 막아둬서 몸 속에 산소공급이 안돼 하루종일 멀미가 난다 그런 멀미나는 몸을 질질끌고 파주찍고 삼성찍고, 요즘 왜 이렇게 몸을 못혹사시켜 안달이 났는지, 인생이 자꾸 영화보다는 다큐로 흘러가니까 영화속에 파묻혀서 살다가라도 죽고싶은건가 싶다

이 영화, 여성영화제에서 볼 기회를 놓쳤는데 다행히 DVD를 겟했지만..독일영환데 자막이 없다.. 그래서 꾸역꾸역 유럽영화제를 찾아갔는데 한남대교 공사때문에 앞부분을 30분이나 놓쳤다 제길!

I love you (Do You love me?)의 별 어렵지도 않은데 아름답기까지 한 래파토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감정적문맹의 남자. 사실 내가 만나왔던 남자들은 '감정적문맹'과는 매우 동떨어진, 그 당시 매우 적절하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심하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당황스러웠다.

호기심에 독이 든 항아리에 손가락을 넣어 맛을 보았더니 너무 약한거라, 그래서 한 스푼 듬뿍 퍼서 먹고 나온거다 지금 딱.

<2009.10.25>

Great Expectations(1998)

 

감독 알폰소 쿠아론│출연 기네스 펠트로, 에단 호크, 로버트 드니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현실이지만..

그 오만한 표정과 몸짓에 나도 같이 빗속에서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내 앞에 없는 너 때문에 모든 정신과 시선은 흩어져 버렸지만,

그렇게 마음이 덜컹, 덜컹 흔들리다 부서져버렸는데

나는 끝내 너의 손을 잡지는 못할꺼야.. 그 손 잡지 않을꺼야

여기는 현실이니까,  

<2009.10.19>

꽃잎(1996)

 

감독 장선우│출연 이정현, 문성근, 이영란, 추상미, 설경구

 

왜 사람들은 미친년을 보면 가만 두지 못할까, 그게 미친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거다. 제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드니까 놓아버린 걸. 생각해보면, 당신들도 살면서 미치고 싶은 순간이 어디 한 두 번이었나? 우리는 아직 못 미쳤을뿐이다.

때때로 정말 정신줄 놓아버리고 싶게 만드는 이놈의 한국, 슬프도록 가여운 한국..  

<2009.10.18>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감독 이장호│출연 안성기, 이영호, 김성찬, 임예진, 김보연, 최불암 등

 

최불암할아버지와 김보연아줌마가 키스씬을, 박원숙아줌마와 최희라아저씨는 베드씬을 찍었던 사뭇 생경한 그 시절에는 위아래 합쳐서 옷 한벌이 9천5백원이었다. 그 시절,

비행기를 타도 갈 수 없는 상류층의 세계는 그냥 남의 일, 중국집 옆에는 이발소가, 이발소 옆에는 여관이, 그것들이 그들의 세상이며 그저 그 뿐이다. 다른 세계에서 건너 온 가벼운 호기심에 상처받을 필요없으며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맞거나 타고 흘러가면된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아 보이는 청춘, 그래서 또 다시 그 시절에 태어나지 못한 안타까움이 꿀렁거린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바람을 어찌 할 수는 없었지 않은가. 계속 마음속으로 불어오는 그 바람을, 불어만 오는 그 바람을.. 그래도 나는 지금 마음놓고 슬퍼할 수 있는 바람만을 느끼면 되는거니까..

<2009.10.18>

District 9(2009)

 

감독 닐 블롬캠프│출연 샬토 코플리, 바네사 헤이우드, 제이슨 코프, 데이빗 제임스

 

빨간조끼를 입은 그의 상체가 나체들보다 좀 더 믿음직해 보였던 걸까, 유독 소처럼 커다랗게 꿈벅이는 눈망울 때문이었을까 난 크리스토퍼에게 민망해서 자꾸만 온몸이 화끈거렸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고 외계인을 죽이고 돼지도 죽이고 그냥 자기 자신 빼고 다 죽인다.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세뇌당한듯한 나만 아니면 돼 근성, 디스트릭트나인 지하 3000미터쯤에 묻어버린 듯한 의리.. 크리스토퍼를 너무 감상적으로 그리길래 인간으로서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아무튼 인간은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정말 매력없는 생물체라는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민망할 정도로.

권력, 음모, 매춘, 배반, 종족살인, 사기, 폭력이 난무하는 인간 세계 속에 외계인은 어처구니 없이 순진할 뿐이다. 내 생에 이런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인간이 아닌 외계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디스트릭트9을 디스트릭스9이라고 떡하니 전광판과 티켓에 표기한 것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지,

<2009.10.18>

秋刀魚の味: An Autumn Afternoon(1962)

 

감독 오스 야스지로│출연 류 치슈, 이와시타 시마

 

90년대 초반의 KBS 일일연속극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가 비추는 딱 떨어지는 세트 속 인물들이 만들어낸 보편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으리라. 보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꽁치의 맛이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머리를 분리시켜 놓으면 갈치 이외의 어떤 생선도 구별하지 못하는, 물고기에 대한 몹쓸 무관심과 무지 탓이라 해두자.

원제의 秋刀魚, 가을생선이 꽁치일테고, 저물어 가는 계절 가을은 노년으로 흘러가는 중년의 히라야마의 삶을 의미한다는 식의, 1:100에서 98명은 맞출듯한 무미건조한 해석보다는 꽁치의 맛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에서 나온 해석이 필요하다. 헌데 내 뇌는 모양은 짧은 갈치인데 맛은 고등어인 괴물물고기만 자꾸 그려낸다. 꽁치는 일상적인 맛일까, 혹은 꽁치의 맛을 깨닫는 순간 어른이 된다는 말은 없었나..

아버지는 늙어가고 자식들도 아버지처럼 소소하게 살아가며 함께 나이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사랑에 잠깐 아파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고 부부싸움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나 또한 뇌세포의 파괴됨과 나이먹음의 비례관계에 서글퍼하며 그 길목 어딘가에 서 있고. 인생은 참으로 반전이 없어 슬프고 반전이 없이 슬픈 이야기이다.

, 내일은 꽁치를 먹자.

<2009.10.16>

Radio Days(1987)

 

감독 우디 알렌│출연 대니 앨로, 제프 다니엘스, 미아 패로우, 세스 그린, 로버트 조이, 다이앤 키튼 등

 

윤선생 영어테이프의 윗면을 스카치테이프로 막아 카세트에 끼워 넣고 피아노의 체념이란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기만을 몇 달 동안 기다려야만 했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노래의 제목을 알 수 없어 화장실도 못가고 주구장창 라디오 앞에 머물던 그 시절,

삐- 소리로 점철된 고스트 스테이션의 전조, 음악도시에서 신해철이 거침없이 쏴대던 욕설에 황홀해 하던 아름다운 시절,

유희열의 변태행각이 정상을 찍던 음도의 더올시절,

햇빛에 먼지가 포르르 날리던 오전, 전국고교 영어듣기평가 직전에 흘러나오던 부모의 시간 취소방송에 이상하게 설레던 고교시절,

수다스런 우디알렌의 회상에 견줄만한 나의 잔잔한 라디오 데이즈  

<2009.10.15>

Seul Contre Tous(1998)

 

감독 가스파 노에│출연 필립 나혼, 블란딘느 르노어

 

딸 신시아를 강간했다는 오해로 공사판 노동자의 입을 칼로 찢은 후, 정말 7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한 듯 다시 돌아온 필립나혼의 강박증에 관해 무섭게 이야기 한다.

보도블럭의 금을 밟기 싫고 지하철 의자의 한 중간에 앉기를 거부하는 나의 사소했던 강박증의 내면과 별 다를 바 없는,

그의 강박증 위에 속속들이 깔리는 속마음들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여기는 방치의 끝이다.  

<2009.10.15>

장미빛 인생(1994)

 

감독 김홍준│출연 최명길, 최재성

 

구로공단. 서울의 변두리 공단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신도림에는 사람이 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 곳은 그저 빛바래고 부식된, 낮은 회색 벽돌 건물들과 말 없는 공장들의 이름이었다. 그렇게도 어렸고 그렇게도 어렸기에 지금 이 세상을 거져 얻은 줄 로만 알았겠지. 

구로공단.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짓눌린 삶의 이름.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던 나의 그 어린시절에, 너무 엿 같고 병신같은 세상에서 가슴을 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삶들 그 앞에서, 나는 지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서울로 유학와 고등교육을 받고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운동권에 뛰어든 아들과 어떻게든 제 앞가림만 하고 살면 되었던 딸 혹은, 무능한 집구석에서 뛰쳐나와 맨손으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주먹질 뿐인 오빠와 밤무대 스트리퍼인 여동생.

평범하지만 감춰두어야 했던 삶들이 곪고 곪아 문드러졌던 그 시절,

 

지금 내 사랑의 무게만큼, 그들도 사랑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안다고 이야기하고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아득해진다

<2009.10.05>

Wild At Heart(1990)

 

감독 데이빗 린치│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로라 던

 

어뎁테이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니콜라스케이지가 좋았다. 결코 다시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벤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휑한 앞머리와 긴 코만으로도 가슴을 찢어질 듯 아프게 했던 그 벤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광란의 사랑의 세일러로 내 앞에 나타났다.  

데이빗 린치와 니콜라스 케이지라니. 말도 안돼,

말도 안되는 사랑의 해피앤딩이라니!

니콜라스 때문인지, 명상으로 다듬어진 린치의 건강한 정신력 때문인지, 보안관의 총에 쭈쭈바 뚜껑처럼 날아가 버린 바비의 머리통마냥 조각나 버릴 줄 알았던 '광란의 사랑'들에 해피앤딩이 존재한다.

그들, 정말로 백만년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200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