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4일 목요일

Radio Days(1987)

 

감독 우디 알렌│출연 대니 앨로, 제프 다니엘스, 미아 패로우, 세스 그린, 로버트 조이, 다이앤 키튼 등

 

윤선생 영어테이프의 윗면을 스카치테이프로 막아 카세트에 끼워 넣고 피아노의 체념이란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기만을 몇 달 동안 기다려야만 했던,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그 노래의 제목을 알 수 없어 화장실도 못가고 주구장창 라디오 앞에 머물던 그 시절,

삐- 소리로 점철된 고스트 스테이션의 전조, 음악도시에서 신해철이 거침없이 쏴대던 욕설에 황홀해 하던 아름다운 시절,

유희열의 변태행각이 정상을 찍던 음도의 더올시절,

햇빛에 먼지가 포르르 날리던 오전, 전국고교 영어듣기평가 직전에 흘러나오던 부모의 시간 취소방송에 이상하게 설레던 고교시절,

수다스런 우디알렌의 회상에 견줄만한 나의 잔잔한 라디오 데이즈  

<2009.10.15>

Seul Contre Tous(1998)

 

감독 가스파 노에│출연 필립 나혼, 블란딘느 르노어

 

딸 신시아를 강간했다는 오해로 공사판 노동자의 입을 칼로 찢은 후, 정말 7년 만에 감옥에서 출소한 듯 다시 돌아온 필립나혼의 강박증에 관해 무섭게 이야기 한다.

보도블럭의 금을 밟기 싫고 지하철 의자의 한 중간에 앉기를 거부하는 나의 사소했던 강박증의 내면과 별 다를 바 없는,

그의 강박증 위에 속속들이 깔리는 속마음들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여기는 방치의 끝이다.  

<2009.10.15>

장미빛 인생(1994)

 

감독 김홍준│출연 최명길, 최재성

 

구로공단. 서울의 변두리 공단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

신도림에는 사람이 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 곳은 그저 빛바래고 부식된, 낮은 회색 벽돌 건물들과 말 없는 공장들의 이름이었다. 그렇게도 어렸고 그렇게도 어렸기에 지금 이 세상을 거져 얻은 줄 로만 알았겠지. 

구로공단.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짓눌린 삶의 이름.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전부였던 나의 그 어린시절에, 너무 엿 같고 병신같은 세상에서 가슴을 치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던 수 많은 사람들의 삶들 그 앞에서, 나는 지금 어쩔 줄을 모르겠다.

서울로 유학와 고등교육을 받고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운동권에 뛰어든 아들과 어떻게든 제 앞가림만 하고 살면 되었던 딸 혹은, 무능한 집구석에서 뛰쳐나와 맨손으로 서울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주먹질 뿐인 오빠와 밤무대 스트리퍼인 여동생.

평범하지만 감춰두어야 했던 삶들이 곪고 곪아 문드러졌던 그 시절,

 

지금 내 사랑의 무게만큼, 그들도 사랑을 품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안다고 이야기하고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아득해진다

<2009.10.05>

Wild At Heart(1990)

 

감독 데이빗 린치│출연 니콜라스 케이지, 로라 던

 

어뎁테이션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니콜라스케이지가 좋았다. 결코 다시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벤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휑한 앞머리와 긴 코만으로도 가슴을 찢어질 듯 아프게 했던 그 벤이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광란의 사랑의 세일러로 내 앞에 나타났다.  

데이빗 린치와 니콜라스 케이지라니. 말도 안돼,

말도 안되는 사랑의 해피앤딩이라니!

니콜라스 때문인지, 명상으로 다듬어진 린치의 건강한 정신력 때문인지, 보안관의 총에 쭈쭈바 뚜껑처럼 날아가 버린 바비의 머리통마냥 조각나 버릴 줄 알았던 '광란의 사랑'들에 해피앤딩이 존재한다.

그들, 정말로 백만년동안 행복했으면 좋겠다.

<2009.10.04>

Grace(2009)

 

감독 폴 솔렛│출연 조던 래드, 가브리엘 로즈, 사만다 페리스, 말콤 스튜어트

 

인간사에서 일어나는 가장 끔찍한 공포는 대부분

결핍과 집착에서 비롯되는 듯 하다

혈기 왕성한 시절에는 정신분석학을 뒤적거리며 돌파구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지금 난 그저 피하고 싶을 뿐, 마주하고 싶지 않을 뿐

<2009.10.02>

Thirty-Two Short Films About Glenn Gould(1993)

 

감독 프랑소와 리자르│출연 콜므 포어

 

Glenn Gould (1932-1982)

재산의 반을 SPCA(동물학대방지협회), 나머지 반은 구세군에 기부, 특유의 사상과 신념을 가졌던 클래식 피아니스트

 

서른 두 단락으로 이루어진 글렌굴드의 완벽한 자소서

자신의 삶에서 음악도, 사랑할 줄 알았던 진정한 음악인을 만났다.

<2009.10.02>

The Ugly Truth(2009)

 

감독 로버트 루케틱│출연 제라드 버틀러, 캐서린 헤이글

 

아무 이유 없다 제라드 버틀러가 뿜어대는 거친 숨결을 느끼고 싶었을 뿐이다 키스 한 번이면 스크럽이 될 듯한 무심한 얼굴 털, 내 뼛속까지 투시해 버릴 것 같은 야성의 눈빛, 나도 모르게 안겨버리고 말 것 같은 드넓은 어깨 아아 그런데 그 짐승의 몸 안에서 나오는 뜨거운 순정.. 근육으로 무장한 폭신한 곰돌이 인형들아 다 어디에 숨었니

<200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