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4일 목요일

자유부인(1956)

 

감독 한형모│출연 박암, 김정림, 양미희

 

은연중 내 머릿속에 자유부인은 누구누구 가슴이 수박만한가 콘테스트스러운 '부인'시리즈의 일종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때 오빠서랍에서 발견된 '솥뚜껑부인 열받았네'(정말 이런게 있을 줄이라고는..)를 떠올리니 깊은 반성이 저절로 들어온다. 몹쓸 일반화..

고전영화의 수많은 매력 중의 하나는 21세기 속에만 머물러있는 편협한 나의 사고를 와장창 깨주는 것이다. 1956년, 오마담을 스쳐지나가는 숱한 비열하고 치졸한 남정네들을 보면 지금이랑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뭐 오마담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오마담의 연애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달면 삼키고 단물 빠지면 뱉어버리는 쓰레기같은 마음은 아니었으니, 일단 가족을 떠나서 본인의 입장에서만 생각해보면 지금은 비참할 지언정 후회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선영씨, 1956년에 가정주부가 가족에게 버림받으면 갈 곳이 어디있나요.    

자유는 사실 아무나 누릴 수 있는게 아닙니다.

<2009.10.28>

Alle Anderen(2009)

 

감독 마렌 아데│출연 버짓 미니크마이어, 라스 에이딘거

 

매달 잊지않고 찾아오는 감기의 10월버전은 독하기도 하다, 코를 너무 완벽하게 막아둬서 몸 속에 산소공급이 안돼 하루종일 멀미가 난다 그런 멀미나는 몸을 질질끌고 파주찍고 삼성찍고, 요즘 왜 이렇게 몸을 못혹사시켜 안달이 났는지, 인생이 자꾸 영화보다는 다큐로 흘러가니까 영화속에 파묻혀서 살다가라도 죽고싶은건가 싶다

이 영화, 여성영화제에서 볼 기회를 놓쳤는데 다행히 DVD를 겟했지만..독일영환데 자막이 없다.. 그래서 꾸역꾸역 유럽영화제를 찾아갔는데 한남대교 공사때문에 앞부분을 30분이나 놓쳤다 제길!

I love you (Do You love me?)의 별 어렵지도 않은데 아름답기까지 한 래파토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감정적문맹의 남자. 사실 내가 만나왔던 남자들은 '감정적문맹'과는 매우 동떨어진, 그 당시 매우 적절하게 사랑을 표현할 줄 알았던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심하게 공감대가 형성되고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당황스러웠다.

호기심에 독이 든 항아리에 손가락을 넣어 맛을 보았더니 너무 약한거라, 그래서 한 스푼 듬뿍 퍼서 먹고 나온거다 지금 딱.

<2009.10.25>

Great Expectations(1998)

 

감독 알폰소 쿠아론│출연 기네스 펠트로, 에단 호크, 로버트 드니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현실이지만..

그 오만한 표정과 몸짓에 나도 같이 빗속에서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내 앞에 없는 너 때문에 모든 정신과 시선은 흩어져 버렸지만,

그렇게 마음이 덜컹, 덜컹 흔들리다 부서져버렸는데

나는 끝내 너의 손을 잡지는 못할꺼야.. 그 손 잡지 않을꺼야

여기는 현실이니까,  

<2009.10.19>

꽃잎(1996)

 

감독 장선우│출연 이정현, 문성근, 이영란, 추상미, 설경구

 

왜 사람들은 미친년을 보면 가만 두지 못할까, 그게 미친사람을 더 미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거다. 제정신으로는 버티기 힘드니까 놓아버린 걸. 생각해보면, 당신들도 살면서 미치고 싶은 순간이 어디 한 두 번이었나? 우리는 아직 못 미쳤을뿐이다.

때때로 정말 정신줄 놓아버리고 싶게 만드는 이놈의 한국, 슬프도록 가여운 한국..  

<2009.10.18>

바람 불어 좋은 날(1980)

 

감독 이장호│출연 안성기, 이영호, 김성찬, 임예진, 김보연, 최불암 등

 

최불암할아버지와 김보연아줌마가 키스씬을, 박원숙아줌마와 최희라아저씨는 베드씬을 찍었던 사뭇 생경한 그 시절에는 위아래 합쳐서 옷 한벌이 9천5백원이었다. 그 시절,

비행기를 타도 갈 수 없는 상류층의 세계는 그냥 남의 일, 중국집 옆에는 이발소가, 이발소 옆에는 여관이, 그것들이 그들의 세상이며 그저 그 뿐이다. 다른 세계에서 건너 온 가벼운 호기심에 상처받을 필요없으며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맞거나 타고 흘러가면된다. 지금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아 보이는 청춘, 그래서 또 다시 그 시절에 태어나지 못한 안타까움이 꿀렁거린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 바람을 어찌 할 수는 없었지 않은가. 계속 마음속으로 불어오는 그 바람을, 불어만 오는 그 바람을.. 그래도 나는 지금 마음놓고 슬퍼할 수 있는 바람만을 느끼면 되는거니까..

<2009.10.18>

District 9(2009)

 

감독 닐 블롬캠프│출연 샬토 코플리, 바네사 헤이우드, 제이슨 코프, 데이빗 제임스

 

빨간조끼를 입은 그의 상체가 나체들보다 좀 더 믿음직해 보였던 걸까, 유독 소처럼 커다랗게 꿈벅이는 눈망울 때문이었을까 난 크리스토퍼에게 민망해서 자꾸만 온몸이 화끈거렸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고 외계인을 죽이고 돼지도 죽이고 그냥 자기 자신 빼고 다 죽인다. 주말 버라이어티에서 세뇌당한듯한 나만 아니면 돼 근성, 디스트릭트나인 지하 3000미터쯤에 묻어버린 듯한 의리.. 크리스토퍼를 너무 감상적으로 그리길래 인간으로서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아무튼 인간은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정말 매력없는 생물체라는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민망할 정도로.

권력, 음모, 매춘, 배반, 종족살인, 사기, 폭력이 난무하는 인간 세계 속에 외계인은 어처구니 없이 순진할 뿐이다. 내 생에 이런 일이 현실로 나타나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인간이 아닌 외계인들을 위해서 말이다.

디스트릭트9을 디스트릭스9이라고 떡하니 전광판과 티켓에 표기한 것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지,

<2009.10.18>

秋刀魚の味: An Autumn Afternoon(1962)

 

감독 오스 야스지로│출연 류 치슈, 이와시타 시마

 

90년대 초반의 KBS 일일연속극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가 비추는 딱 떨어지는 세트 속 인물들이 만들어낸 보편적인 이야기 때문이었으리라. 보는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 꽁치의 맛이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머리를 분리시켜 놓으면 갈치 이외의 어떤 생선도 구별하지 못하는, 물고기에 대한 몹쓸 무관심과 무지 탓이라 해두자.

원제의 秋刀魚, 가을생선이 꽁치일테고, 저물어 가는 계절 가을은 노년으로 흘러가는 중년의 히라야마의 삶을 의미한다는 식의, 1:100에서 98명은 맞출듯한 무미건조한 해석보다는 꽁치의 맛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에서 나온 해석이 필요하다. 헌데 내 뇌는 모양은 짧은 갈치인데 맛은 고등어인 괴물물고기만 자꾸 그려낸다. 꽁치는 일상적인 맛일까, 혹은 꽁치의 맛을 깨닫는 순간 어른이 된다는 말은 없었나..

아버지는 늙어가고 자식들도 아버지처럼 소소하게 살아가며 함께 나이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사랑에 잠깐 아파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고 부부싸움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나 또한 뇌세포의 파괴됨과 나이먹음의 비례관계에 서글퍼하며 그 길목 어딘가에 서 있고. 인생은 참으로 반전이 없어 슬프고 반전이 없이 슬픈 이야기이다.

, 내일은 꽁치를 먹자.

<2009.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