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5일 일요일

김약국의 딸들(1963)

 

감독 유현목│출연 김동원, 엄앵란, 최지희, 이민자, 황정순

 

고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각색한 작품이다. <오발탄>과 달리 영화화가 아닌 각색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이유는 원작과 내용, 결말이 살짝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소설이 '김약국의' 딸들인지 '김약국집' 딸들인지 매번 헷갈린다 뭐 중요하겠냐만은(30초만 투자해 인터넷에서 검색하는 성의만 보이면 될 것을 몇몇 평론가들도 자주 헷갈려 하는 듯)

원작과 영화의 발단에서는 모두, 비상먹고 자살한 성수(훗날 김약국집 딸들의 아버지가 되는..)의 어머니로 인해 집안의 미래가 평탄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성수를 데려다 기르는 큰어머니에 대한 묘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데 소설 속에서 그녀는 동서(죽은 성수의 어머니)에 대한 열등감에 사로잡혀 성수를 심리적으로 무지하게 괴롭히고 결국 성수를 술에 물탄 듯 물에 술탄 듯한 밋밋한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사실 영화만 본다치면 성수씨가 한 두평짜리 약방 속에서만 살아와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라 

먹고살아보자고 말도 안되는 어장관리 분야에 뛰어든 것 처럼 나오지만 다 저런 속사정이 있던 거다. 가정환경이 한 개인의 실체를 완성시키는데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포커스가 맞춰진 것도 사실 뭐 참여 정부 보다 더 훗날의 일이니..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무슨 심리학이며 정신분석학 나부랭이- (우리 어린이들은 눈떠보니까 풍요가 넘치다 못해 풍요에 찌든 세상이었겠지만 쌀통에 담긴 쌀의 양이 인생 질의 척도였던 시절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난건 사실 밀레니엄 이후란다)

아무튼 그 성수씨가 자라 약국을 물려받고 결혼을 하고 딸들을 낳는다.

소설에서는 다섯 명, 영화에서는 네 명.

첫째 용숙이와 둘째 용빈이 셋째 용란이까지는 동일한데 영화 속 막내 용옥이는 소설 속 넷째 용옥이와 막내 용혜의 믹싱이다. 애정없는 기두와의 결혼생활로 인해 자살(하지 않고) 용빈이(도)와 통영을 떠나(지 않는)다. 대신 정줄놓은 용란이가 바다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아버지(성수)도 위암이기는 하지만 영화 앤딩보다는 오래 사신다.

현실은 시궁창일지언정 영화에서 만큼은 밝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유현목 감독님만의 해피앤딩이지 싶다.

한가지 작은 의문는, 샤머니즘의 파워가 얼만큼인지, 믿기도 안믿기도 참 애매하긴 하다는 거다. 영화 속에서도 무속인 할머니가 김약국집딸들 어머니의(..성수씨의 부인? 김약국댁?ㄴㄱ) 죽음을 예견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굿으로 그 죽음을 비켜가지는 못했다. 예견은 하지만 미래를 바꿀 수는 없다? 어게인의 그 파란눈 언니처럼? 그리고 속설이라는 것도 그렇다. 비상먹고 죽은 집 자손들은 대대로 망한다니? 근데 정말 줄줄이 망했다. 헐 그럼 진짜 진평왕과 마야부인이 쌍둥이를 낳아서 진골 남자의 씨가 마른거구나..

점점 더 세상이 진보하고 과학과 지식이 발전해 감에 따라 그저 무지몽매했던 과거의 한 부분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뭔가 아쉬운 부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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